자료실

알고갱이 시절

정지원시인 2022. 8. 31. 13:44

내 알고갱이 시절

정지원

십여리 국민학교 가는 길

논둑길을 가로질러

배과수원 철조망 울타리 지나

버스다니는 신작로 보이면

오른쪽 을씨년스런 상여집

왼쪽 황토 너른 밭

봄엔 보리 가을엔 배추

길가생이 한고랑 무잎 푸르렀다

 

국민핵교 이학년 때

서울로 전학 간 장남

이미 남의 오빠다

장난꾸러기 사내애들

여자애들 골탕 먹이려

뱀사체 가로질러 길에 깔아놓고

머리 땋아놓은 질긴 사초풀에

뛰거나 걸어가다 고꾸라지면

등치작은 날 말없이 애호한 건

옆집 오빠다

 

봄이면 삘기순 따주고

여름엔 새콤달콤 빨간 산딸기

가을엔 노란 속 고갱이 꽉 찬

내 작고 힘없는 주먹으론

어림없던 단단한 배추 속

두 손가락 푹 질러 파서

내 입속에 넣어주곤 했다

 

철모르고 철모르게 지난

구멍났던 껍데기 시절들

옹골차게 알고갱이

채워가고 있다

 

 

(박두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==

시인의 알고갱이 시절을 떠오르며)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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