내 알고갱이 시절
정지원
십여리 국민학교 가는 길
논둑길을 가로질러
배과수원 철조망 울타리 지나
버스다니는 신작로 보이면
오른쪽 을씨년스런 상여집
왼쪽 황토 너른 밭
봄엔 보리 가을엔 배추
길가생이 한고랑 무잎 푸르렀다
국민핵교 이학년 때
서울로 전학 간 장남
이미 남의 오빠다
장난꾸러기 사내애들
여자애들 골탕 먹이려
뱀사체 가로질러 길에 깔아놓고
머리 땋아놓은 질긴 사초풀에
뛰거나 걸어가다 고꾸라지면
등치작은 날 말없이 애호한 건
옆집 오빠다
봄이면 삘기순 따주고
여름엔 새콤달콤 빨간 산딸기
가을엔 노란 속 고갱이 꽉 찬
내 작고 힘없는 주먹으론
어림없던 단단한 배추 속
두 손가락 푹 질러 파서
내 입속에 넣어주곤 했다
철모르고 철모르게 지난
구멍났던 껍데기 시절들
옹골차게 알고갱이
채워가고 있다
(박두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==
시인의 알고갱이 시절을 떠오르며)